미 해병대의 춘천 홍천 간 원창(모래)고개 전투지 탐방
2020.10.24(토) 집사람과 주말을 맞아 평소에 답사하지 못했던 원창고개 격전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계절적으로 가장 좋은 가을의 정점에 이르렀기에 야외에서 등반이나 산보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원창고개에서 전투는 1951년 5월 중순 벌어졌는데 이 시점은 1.4후퇴 이후 미 해병대가 저 멀리 북쪽 화천까지 탈환했다가 4월 중공군 춘계 대 공세 때 좌측 전선의 화천군 사창리에 본부를 둔 국군 6사단이 일시에 붕괴 패퇴했기에 전진했던 화악산 및 북배산을 경계로 미 해병의 측/후방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될 위험성 때문에 당시 춘천에서 북한강을 건너 화천을 연결하였던 모진교를 확보하고 전진했던 부대가 후퇴할 수 있는 필사적 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좌측 사창리 및 가평 북면으로 부터 북한강으로 중공군의 침투를 막기위한 화악산 및 광덕산 줄기인 Horse-shoes 능선에서의 전투를 포함하여 화천 북방과 모진교로 이어지는 북한강 서안에서의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서 미 해병대는 춘천의 소양강 남단으로 후퇴하여 미 8군 전략적 판단에 따라 4월 말 홍천 북방까지 재 후퇴하여 반격의 기회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중공군이 5월 중순 1차 춘계 대 공세 때 달성하지 못한 서울함락 및 UN군 축출을 기도하기 위해 2차 춘계 대공세가 5월 중순 시작되었는데 중동부 국군 전선을 노렸고 이에 따라 중동부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미 해병은 미 육군 9군단 휘하에서 10군단 휘하로 소속이 변경되어 춘천 남단 북한강 남단, 홍천강과 소양강 남단에서 저지작전을 하고 있었다.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전개된 미 해병대의 원주, 횡성, 홍천 및 춘전지구 중부전선 탈환작전과 관련 대 부분 전투지 탐방을 하였으나 이 번에 원창고개를 탐방하여 미 해병의 노력과 희생을 전체적으로 기릴 수 있었다.
아침 08:45 차를 가지고 서울 한강 남단의 송파구에서 출발하여 강변북로를 타고 양평방향으로 주행하는데 토평 IC 통과하면서부터 길이 막혀 덕소를 빠져 나와서 덕소삼패 IC로 진입 서울/양양(춘천) 고속도로를 타고자 하였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진입하였어도 역시 체증이 계속되어 화도IC로 빠져 나와서 연결되는 46번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주행하다 북쪽으로 주행하여 북한강 옆 대성리와 신청평대교를 지나 북한강을 건너 청평호 남단의 지방도로를 따라 주행하다 솔고개쉼터에서 잠간 쉬었다. 쉼터는 전에 인근 화야산/곡달산에서 채취한 고로수를 팔았으나 이제는 없어져 버렸고 동쪽으로 설악과 홍천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남서측으로 스위스 에델바이스 마을을 경유 서정IC근처로 이어지는 합루점이기도 하였다. 설악면에서 다시 교통체증이 있었으나 곧 이어서 춘천과 홍천측 86번 국도 상 시원하게 홍천강 소암이섬 하단까지 주행할 수 있었으며 여기서 홍천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기에 494번 지방도를 타고 남동측으로 주행하여 홍천군 남면에 이르렀다. 이 때가 12:30, 전에 들렀던 마당갈비탕을 찾아 점심을 즐겼고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니 13:00이 되었다. 집에서 부터 여기까지 3.5시간 주행을 한 셈이었다. 우리가 주행한 도로는 1951년 3월 초 부터 Killer 작전을 전개하여 횡성을 탈환하고 이어서 홍천과 춘천 탈환을 위해 전개된 Ripper 작전에서 미 해병 좌측의 국군 6사단, 영국군 27여단, 미 기병 1사단이 작전을 수행하던 지역이었다. 남면에서 부터 홍천으로 북동측으로 이어진 국도는 지평리 전투가 있었던 용두에서 시작되어 인제를 있는 도로였다.
홍천읍에 진입하자 춘천의 원창고개를 가는 625당시 도로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 정차하여 확인하였고 5번 국도가 현재의 중앙고속도로와 나란히 남북으로 이어져 춘천으로 연결되었다. 원창고개 진입전은 논으로 된 평지가 이어져 있으며 가는 길에 동측으로 전에 탐방했던 강재구 소령 훈련장 이정표가 보였으며 이 지역은 3월 38선 회복을 위한 춘천 탈환을 위한 홍천 북방의 미 해병 Ripper작전의 Buffalo 전선이었다.
원창고개에 진입하자 깎아 지른 듯한 험한 산 고개 사이로 2차선 길이 나 있는데 계속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졌으며 모래제와 원창고개 이정표가 고개 정상에서 보였다. 내려가는 길 또한 완만하게 길게 이어져 춘천시가의 좌측 현재의 춘천역으로 이어지는 철도 옆으로 나란히 연결되었다.
이 고개에서 5월 16-17일 미 해병1사단의 예비대로 있던 7연대를 8군의 방침에 따라 전초 기지 주둔부대로 배치하여 경계임무를 수행 중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군단으로 부터 대대급 전초기지 배치명령에 대하여 사단장은 연대급 부대로 배치하기로 하여 미 해병 7연대가 춘천을 관찰할 수 있는 원창고개 및 접한 고지대에 배치되어 있었고 적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시 후방의 전선으로 철수하도록 명을 받고 있었다.
고개 전방 중대급 전초를 교묘하게 우회하여 연대급 중공군이 고개 정상의 대대급 전초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이 때부터 2차 춘계대공세가 시작되었다. 중공군은 야음을 타서 전초를 우회하여 후방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생각한 고개 정상을 점령하고자 접근해 왔으나 매복한 미 해병대의 야포공격과 일제 사격으로 전진이 저지되었으나 일부는 저지선으로 접근하여 백병전을 치루기도 하였다. 새벽 무렵에야 중공군은 후퇴하고자 하였으나 미 해병의 항공, 포병, 박격표 등 화망에 걸려 들어 대부분 사살되었다.
이 후 미 해병은 10군단의 우측에서 후퇴한 한군군의 작전지역을 탈환하고자 우측 미 육군 2사단의 전선까지 확장하였고 2사단은 적진 깊숙히 전진하며 한국군과 상실했던 중동부 전선을 탈환하였다.
이번 미 해병의 전적지를 돌아 보면서 대한민국 어느 지역 어느 장소에서나 우리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고 우리는 현재 누리는 행복이 이러한 희생과 헌신 위에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않 될 것이며 혈맹 미국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Sky Deck 및 소양강 소녀상이 있는 춘천 소양강변 남단을 1시간 동안 거닐며 쉬다가 17:00 출발하여 춘천 IC로 진입하여 양양/서울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강촌 IC부터 막혀서 결국은 서종 IC로 나와서 북한강변을 타고 오다가 18:00경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양수리 교통체증을 우회하여 정약용 생가와 팔당대교를 건너 한참을 경유 집에 도착하니 20:00 이었다. 거의 12간의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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