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titude of the US Army 32th RCT, Love and Alliance with USA. 미 육군 7사단 32연대 희생에 대한 사랑과 감사 그리고 동맹의 의미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많은 UN군 장병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한다. 또한 많은 전공을 세운 부대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패전한 부대와 그들의 희생에 대하여는 대부분 생각하지 않는다. 전장에서는 모든 부대가 연결되어 있으며 패전한 부대의 희생은 인접 부대의 승리 또는 전략적인 기회를 가져온다. 따라서 한국전의 급변하는 전황에서 모든 부대는 각각의 임무가 있었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패배하기도 하였다.
We try to remember the sacrifice of UN soldiers in Korean War. We also are
proud of the military unit won victory in the battles. However, we used to
forget the unit and its soldiers defeated in the battle. All military units are
connected together each other in battle field and the sacrifice of one military
unit sometimes bring up victory of other unit or tactical opportunity for the whole
friendly force. So every unit had each mission in Korean war and sometimes was forced
to be sacrificed.
전투에서는 부대가 용감하게 싸운다 하여도 적의 작전과 압도적인 병력에 의해 한 부대의 희생이 불가피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한 부대의 희생은 아군으로 하여금 시간과 전력을 확보하여 반격의 기회를 가져다 주고 전장에서 승리하게 하기도 하였다. 전투에서 적은 항상 은폐하고 기습하려고 하기에 군사작전은 대부분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행된다. 따라서 병력과 화력의 규모보다도 순간순간의 전황에 따른 부대장의 판단과 대처가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하며 불가피 패배한다 하여도 부대의 손실을 최소화한다.
Sometimes, it is inevitable to lose the unit, no matter how hard they fight in
face of the out-numbering enemy. The friendly force got the opportunity to
recover their fighting power and to bring the chance of counter attack in time when
a neighboring unit was destroyed. In the battle, enemies are so trying to
conceal and ambush that the operations have to be carried out with great
uncertainty. So the decision of battle field commander and actions followed can
minimize this uncertainty and ensure victory, and, in case of inevitable
defeat, the size of unit loss can be mitigated.
결국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은 장병들이 갖고 있는 가치와 그를 지키기 위한 신념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군인에게 필요한 군기는 각 장병들이 갖고 있는 신념에 기인되며 전장에서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는 책임을 다하게 된다.
The credit of each soldier based on his life value can only makes soldier
brave. The military principle is created from the soldier’s individual belief
and it surely facilitates to carry every mission given in order.
1953.7월 한국전쟁이 휴전상태로 되어 65년이 경과한 작금의 상황을 보며
1950.11월부터 12월초까지 북한의 장진호에서 벌어졌던 미 7사단 32연대의 희생과 가치를 상기하고 우방(미국)과의 혈맹의 의미를 새기고자 한다. In
the situation, 65 years has lapsed after cease fire of Korean war, I would like
to remind of the sacrifice and its value of the US Army 32 Regiment 7 th Division
in regard of the battle taken place in Chosin(Jangjin) reservoir and the
meaning of Blood Shared Alliance Relationship with USA.
1950.9월 인천에서 상륙작전이 개시되어 미군을 중심으로 한 UN군과 국군은 38선을 넘어 북진을 하게 되었고 맥아더 장군의 작전에 따라 미 정예 해병1사단과 육군7사단은 동해를 통하여 원산에 상륙 북으로 진격하였다. Inchon
Landing Operation, launched in Sep. 1950, was the turning point for the UN and
ROK forces to cross the border of the 38th parallel, forwarding
northward and the 1st Division of USMC and 7th US Army
Infantry, upon the order of General MacArthur, landed in Wonsan and onward
northward along the East Sea.
그러나 엄청난 병력의 중공군이 1950.11월 초에 참전하여 UN군은 북한지역에서 전면적인 후퇴를 하게 되었고 장진호 좌측의 미 해병과 우측의 7사단 32연대도 각각 후퇴하게 되었다. However
a huge number of Chinese Liberation Army forces surprisingly engaged in the Korean
war in Nov. 1950 and UN Force started to retreat totally from the north while
the USMC and the 32nd Regiment 7th Army Division had to retreat each
other from Chosin Reservoir in a eastern part of North Korea.
해병1사단은 한국전이 발발하자 낙동강 전선의 호남쪽에서 부산을 향하여 진격해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마산의 진동리로부터 서쪽의 진주/사천으로 반격작전을 수행하였으며 후방의 UN군 전선이 전선이 붕괴되는 긴박한 전황에서는 기동타격대로 투입되어 위기를 극복한 전과로 북한군에 잘 알려진 정예부대였다. 7사단은
1945.8월 일본이 항복하고 한국이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될 때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이동하여 일본군 무장해제 및 남한에서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군정을 수행한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는 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두 부대는 미 1군단장인 알몰드(Almond)
소장의 지휘를 받아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여 7사단은 수원/안양으로 남진하여 낙동강으로부터 진격해오는 미 8군 부대와 조우하였으며 미해병은 서울을 점령한바 있었다. The 1st Marine Division had well
known for the initial battle against the NK force attacking from South West
Korea to Pusan Port, initiating the counter attacking operation to Jinju/Sachon,
and NK knew well about the marine’s fighting ability demonstrated along Nakdong
River Resistance Line when they appeared as a reserve force at each critical
situations when NK succeeded to infiltrate and get chance to destroy UN force.
The US Army Division 7 was stationed before Korean War to disarm Japanese force
in time of Japanese surrender and Pacific war and to administrate Korean government
before establishment of Korean cabinet. These two(2) divisions engaged in
Inchon Landing Operation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Almond: The 7th
Division onward south to Suwon and Anyang area to meet the 8th Army
Force, under Commander General Walker, coming up and breaking out of Nakdong
River Line and US Marines recovered Seoul city after the landing operation.
이 부대들이 북한의 장진호 양안으로 진격하여 북한전역을 점령하고자 했으나 엄청난 병력의 중공군이 은밀하게 장진호 주변을 포위하고 후퇴할 수 있는 흥남까지의 도로를 완전히 차단하여 완전하게 궤멸시키고자 하였다. 해병사단장인 스미스(Smith)
소장은 전선에서 중공군 병력규모를 파악하고자 노력했으며 각 부대간 합동하여 공격력을 발휘하도록 조치하였으나 해병사단은 중공군 3개 사단으로 구성된 압도적인 2개 군단과 싸워야 했고 7사단 32연대는 중공군 1개 사단과 싸워야 했다. 장진호 좌측 최북단의 유담리에 2개 해병연대가 진격했고 1개 연대는 장진호 최남단에서 좌측과 우측이 분기되는 강의 입구인 하갈우리에 있는 사단본부와 흥남까지의 보급로를 지키고 있었다. 우측의 32연대는 1개 대대가 합류되지 않은 상황에서 2개 대대가 장진호 우측 호안을 따라 풍유리강 북안과 입구와 후동리에 진주해 있었다. These
two(2) units tried to attack the both side of Chosin Reservoir and to occupy further
the other north eastern part of North Korea, but Chinese Liberation Army Forces
surrounded the Reservoir with their outnumbering forces and cut off the retreat
route of US Forces to Heungnam Port for destroying. The Divisional Commander of
US Marine Smith tried to identify the scale and status of Chinese forces and to
unite each unit for maximizing fighting capability but they had to face with
two Chinese Army Corps each of which is consisting of a three(3) Divisions, and
32nd Regiment 7th Division of US Army had to fight
against one(1) full divisional Chinese force. On the left side of Chosin
Reservoir, two(2) Marine Regiments forwarded to the farthest north of Reservoir
and other one Regiment kept the Hagalu-ri, the point to which left and right
roads of the reservoir combined together at the farthest south tip of the Reservoir,
and maintain the single supply route, to Heungnam Port, free from Chinese
blockade. The 32nd Regiment, consisting of two(2) Battalions on the
right side of the Reservoir, stationed along the reservoir near Pungyu-ri River
and Hudong-ri.
미해병 사단본부가 있는 하갈우리가 중공군의 손에 들어가면 북진한 전체 부대의 후퇴로가 완전히 차단되고 궤멸될 수 있어 대단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중공군은 이 지역을 점령하고자 계속적으로 공격을 시도하였다. 맥아더 장군은 결국은 후퇴를 명령하게 되었고 중공군의 매복공격을 격퇴하면서 함흥으로 후퇴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하갈우리가 사수되어야 했기에 32연대 후퇴 시 하갈우리 주둔 해병으로부터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대 단독으로 후퇴작전이 수행되었다. Hagalui-ri
area was very critical point because, if fallen into the enemy hand, all USMC Division
and Army Regiment could be isolated off the retreating route and destroyed unit
by unit. So Chinese had continuously attacked and General MacArthur had to order
all forces retreating from the Chosin. For retreating operation, it should be critical
to protect Hagalu-ri to which all forces had to come and 32th Regiment had to
fight off and retreat themselves from the east area of the reservoir because
the Marine could not support in the same tough situation.
결과적으로
1950.11.27일부터
12.1일까지 미해병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하갈우리로 온전하게 후퇴하였으나 육군은 불행하게도 장진호 동안에서 완전하게 궤멸되었다. 알려진 32연대의 피해는 1000명의 병력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으며 전차, 야포, 수송차량 등 연대장비가 완전하게 파괴되었다. Consequently,
USMC could break out from the Chinese round up from 27 Nov. 1950 to 1 Dec. 1950
but 32th Army Regiment could not and fully destroyed with about 1,000 KIA or
POW, and with armor tanks, artilleries and trucks abandoned.
따라서 미 32연대는 연대기를 중공군에게 빼앗기고 장진호전투에서 패배한 자랑할 수 없는 부대로 인식되어 모두에게 잊혀져 있었다. 그러면 맥린(McLean)
연대장과 페이스(Faith)
부연대장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부상병을 포함한 부대원을 살리기 위하여 혹한의 개마고원에서 밤낮으로 추위와 부상속에서도 후퇴작전의 마지막 순간까지 진두지휘를 하면서 전사한 희생과 전차부대를 몰고 후퇴로를 개척하기 위해 용감하게 중공군속으로 진격한 드레이크(Drake)
전차 사령관의 희생, 미공군의 근접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파견된 스템포드(Stamford)
소령이 이끄는 항공통제부대(TACP)의 적 수중의 산중에서의 희생은 어떠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아무런 가치도 없이 이들이 이억만리 동토에서 고통속에 그저 죽어 갔는가? 32연대는 희생되었지만 이들이 미해병 전투기의 근접한 지상공격 지원하에 4박5일동안 처절하게 저항하였기에 상대 중공군 사단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The
Regiment has to be forgotten from all people as they were defeated and taken
their military unit flag away to a hand of Chinese. Then, is it vain for
Regiment Commander McLean and Vice Commander Faith to lead, though themselves
injured, and struggle for saving his force and injured soldiers a couple of day
and night in the utmost freezing Kaema highland ? Is it vain for Tank Commander Drake rushing to
the enemy for opening the retreat route occupied by Chinese hands? Is it also
vain for Major Stamford leading TACP to moving around in the enemy hand
mountains for guiding Close Ground Air Support? All
these men were bravely died for the operation and the struggle of 32th Regiment,
to fight off for hour nights and five days under support of Marine’s Fighting
Aircrafts though they were sacrificed, could damage Chinese Liberation Army
greatly and mitigate Chinese strength applied to USMC on the left side.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여야 하며 현재의 우리의 삶이 유지됨을 감사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보다 근본으로 들어가서 생존했거나 희생된 32연대 부대원들이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생에 실행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신념으로 조국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머나먼 이국에서 작전 중 각각의 맡은바 책임을 다 하였고 그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희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We
have to remember them forever and to thank for our lives. The military members
of The 32th Regiment, whether live or dead, demonstrated vividly Jesus good words
– Love your neighbor as like you. They were willing to carry out their mission
and responsibility to fight against Communism on a foreign land over the ocean,
with their belief on Freedom and Democracy. They proudly accepted their sacrifice
to keep their honor clean.
만약 32연대가 압도적인 적에 의해 포위되었다고 단순히 그들만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중공군에 항복했다면
2018.11월 말에 장진호 남단의 해병이 사수하는 하갈우리는 압도적인 중공군의 군단병력과 추가적으로 장진호 동안의 사단병력이 미32연대를 파괴한 후 신속하게 가세하여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후방퇴로 역시 차단당한 상태에서 중공군에 함락되고 미해병 사단전체가 파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함흥에서 남한으로 후퇴한 미해병이
1.4후퇴 때 평택 원주선까지 남하한 중공군의 우익(중부전선)을 격퇴하고 북으로 재 진격을 할 수 있는 전투력과 공격의 기회를 상실하여 결국에는 UN군은 한반도에서 탈출하고 남한은 공산주의의 군화에 짓밟히는 비극을 맞았을 것이다. If
32th Regiment was supposed to surrender themselves in the surrounded positions
for their lives, USMC, fiercely resisting Chinese attacks at the Hagalu-ri area,
could be wiped out in the end of Nov. 1950 as the Chinese Division destroying
the US Army could rapidly join in integrated outnumbering Chinese attacking
forces and US 1st Marine Division, an elite force, could be totally
destroyed too. Without USMC, the
victories, achieved later by the Marines and brought the opportunity to counter
attack, could not be attained and Chinese forces occupying South Korea up to Pyongtaek
Wonju line(up to 37th Parallel) should not retreat and conquer Korean
peninsula under their Red Communist Boots.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65년전에 참전한 미 32연대 1대대 및 3대대 장병과 그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피로 맺어진 미합중과의 자랑스러운 혈맹관계가 100년을 넘어 길이 보존되기를 기원한다. On
behalf of Koreans,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 appreciation to the American
Veterans, fought off 65 years ago, and Their Supporting Family of The 1st
and 3rd US Army Battalions and wish long live for over 100 years for
the Alliance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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