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ald Reagan’s remarks at Camp Liberty Bell, Korea, Reminded by The One American Witnessing NK’s Provocations of Panmunjom Ax Murder. 북괴군 도끼만행 사건을 목격한 한 미국인의 대한민국 캠프리버티벨 기지에서의 미 대통령 연설에 대한 회고
Ronald Reagan’s remarks at Camp Liberty Bell, Korea,
Reminded by The One American Witnessing NK’s Provocations of Panmunjom Ax
Murder 북괴군 도끼만행 사건을 목격한 한 미국인의 대한민국 캠프리버티벨 기지에서의 미 대통령 연설에 대한 회고
This description was written by an American who had stayed
for 19 years in Korea, in Nov. 2012. 아래 인용문은 2012.11월 당시 한국에 19년 상주했던 한 미국인이 작성했다.
I have thought it's good time to share this descriptions and speech as a North
Korean soldier desperately defected from North Korea at JSA of Panmunjom
village in 13 Nov. 2017. A group of NK pursuit shot 40 bullets and the
soldier was shot with 5 bullets.
한 북한군이 2017.11.13일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북한지역으로부터 탈출한 지금 시점이 이 미국인의 글을 공유하기 좋은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 북한군은 40발의 총격 속에 5발을 몸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The descriptions are as follow.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I would end up staying in Korea for more than two years – two very
eventful and meaningful years. But, all things considered, I don’t think I
spent a more meaningful or memorable day in Korea than that day of
President Reagan visit in November 1983 and that includes the day a bit over a
year later when a Russian tourist defected at Panmunjom, risking his life
in a desperate dash for freedom and triggering a firefight for which four US
soldiers were later awarded the Silver Star.
한국에 19년간 근무하는 동안 최근 2년간에 가장 사건/사고가 많았고 그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1983.11월 레이건 대통령 방문과 1년 뒤 러시아 외교관이 판문점에서 탈출한 사건보다 더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은 총격전을 유발했고 관여한 미군들은 훈장을 받았다.
It appears this later incident also brought a partial measure of revenge for
the Panmunjom Ax Murders of 18 August 1976. The North Korean Senior
Lieutenant Pak Chol, “LT Bulldog”, who commanded the North Korean guards
that day in 1976, was also present during the November 1984 incident. Pak
reputedly ordered the murders of the 2 US soldiers, CPT Arthur G. Bonifas
and 1LT Mark T. Barrett killed in 1976. Pak is believed to have
been one of the 3 North Korean guards killed during the 1984 gun firefight.
그 사건은 1976.8.18일 도끼만행에 대한 일종의 복수전이 되었다.
1976년 당시 사건현장에서 살인을 명령했던 북한군 중위 백철은 1984년 외교관 탈출 현장에 역시 나타났었다. 그는 도끼만행 사건 시 보니파스 대령과 바렛 대위를 살해했었다. 1984년 외교관 탈출 사건현장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3명의 북한군 중 1명이 백철로 판단되었다.
In any case, Pak has not been seen since.
어찌 되었든 백철은 판문점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No other US President had been to the Korean DMZ before at that time of Nov.
1983.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resident Reagan was the first.
역대 미국 대통령은 1983년까지 판문점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레이건 대통령이 최초로 방문했다.
Reagan’s visit occurred during a particularly tense time during the Cold War.
This was 3 weeks to the day after the bombing of the US Marine Barracks
in Beirut. It was less than 3 weeks after Grenada Invasion. It was just
over a month after the Rangoon bombing, where North Korea had attempted to
assassinate South Korean President and a number of other senior South
Korean government officials. KAL 007 had been shot down by the Soviets
near Sakhalin Island less than 2 1/2 months previously.
대통령의 방문은 동서간의 냉전이 심화되어 긴장이 높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 방문시점으로부터 3주가 체 안되어 Beirut 미 해병 막사가 폭탄공격을 받았고 Grenada 침공작전이 벌어지고 3주가 경과한 시점이었다. Langoon에서 한국 대통령과 고위 관료가 폭탄공격을 받은 것은 불과 1개월 뒤 시점이며 KAL기가 소련의 Sakhalin에서 두 달 반 전에 격추당한 시점이다.
President Reagan was easily within North Korean mortar range at Camp Liberty
Bell. He was doubtless observed under North Korean observation and was
possibly within sniper range during his visit to GP Collier.
Camp Liberty Bell에 있는 레이건 대통령은 박격포 유효 사정거리에 포함되어 있었고 Collier GP 방문 시 북한군의 저격거리에 있었었다.
His speech was a damn fine even 29 years later it’s very much
worth reading. Reagan’s delivery was, as usual, virtually perfect. He
truly deserved his sobriquet of “Great Communicator”. 대통령의 연설은 29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명연설로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설은 항상 완벽하며 국민의 소통자라는 대통령의 별칭을 입증하고 있다.
The text of speech is found as below.
연설은 아래와 같다.
"It's an honor for me to be with you and, as you see, this
morning, the first thing when I got here, somebody made sure that I would be
dressed in what the well-dressed man, an American wearing, and I'm very proud
to have that.
여러분과 같이 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오늘 아침 여기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제가 미국인으로서 최고로 옷을 잘 입는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해서 대단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Somebody asked me if I'd be safe up here so close to North
Korean troops, and I said, ``I'll be with the 2d Infantry Division.''
You know, this prompts a story, and I can't help but tell
it. Back in World War II days, a young draftee was complaining about some of
the methods of the Army and the way the Army did things and was asking an old
Regular Army sergeant about this. The Regular Army sergeant said ``Son,
look if you were in charge of a brand new country, you were creating your army
for that brand new country and you finally got a division created, what would
you call it?'' The kid said ``Well I guess I'd call it the 1st Division.'' He
said ``Well in the United States, they called the first one as the 2d Division
and'' he said ``when you understand that, you'll understand everything there is
to know about the Army.'' 또한 누군가가 “제가 북한군과 가까이 있는데 불안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는데 저는 “미2사단과 같이 있어서 그렇지 않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된 한 장정이 미 육군의 부대 배치방식과 부대에 대한 명성에 대하여 담당 선임하사에게 불평을 하였습니다. 선임하사는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귀하가 한 국가의 책임자라 가정하고 최고의 육군사단을 창설한다면 그 부대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장정은 답변했습니다. “저는 제일사단으로 부르겠습니다.” 하사는 말하였습니다. “미군에서는 제일사단이 바로 귀하가 가는 제2사단이다. 따라서 이점을 귀하가 이해할 수 있다면 미 육군 전체를 알게 된 것이다.”
This has been an experience that I
will always remember. There's no better proof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trength and freedom than right here on the DMZ in Korea. You are in the
frontlines of freedom and I want each of you to know that I bring you warm
greetings from your family and your friends back in the States. And I bring
something else, too -- the gratitude of 230 million Americans who told me to
tell you, ``We love you, 2d Infantry Division.'' 제가 늘 기억하는 경험이 있습니다. 힘과 자유의 상관관계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바로 한국의 비무장 지대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으며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가 전하는 따뜻한 인사를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2억3천 미 국민이 저에게 전한 그들 모두가 미 육군 2사단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들의 감사를 여러분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You stand between the free world and the armed forces of a
system that is hostile to everything we believe in as Americans. The Communist
system to the North is based on hatred and oppression. It brutally attacks
every form of human liberty and declares those who worship God to be enemies of
the people. Its attack against the leaders o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n
Rangoon made clear what kind of enemy you face across the DMZ. 여러분은 자유세계와 미국인이 믿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군사적 집단과 사이에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공산체제는 질시와 압제로 가득합니다. 저들은 모든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며 하나님을 믿는 교인을 민중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랭군에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를 암살한 것을 보면 여러분이 어떠한 종류의 적과 군사분계선에서 대치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In so many ways, the Korean peninsula is symbolic of the
larger world. In the South, energy and creativity abound. The positive mood of
the people, their enthusiasm and work are propelling this part of Korea into
the 21st century and a new era of opportunity and prosperity. To the North, the
Communist regime's heavy hand stagnates the economy, suppresses the spirit of
the people. Like most Communist regimes, the only thing it can produce well is
repression and military might. The only thing deterring the use of that
military might is a commitment by the Korean people here in the South and the
dedication of brave men and women like yourselves.
여러 측면에서 한반도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쪽 한국은 역동적으로 혁신하였습니다. 한국인의 긍정적 태도, 열정과 헌신은 21세기에도 성장을 보장할 것이며 새로운 기회와 번영을 가져올 것입니다. 북한 공산정권의 압제는 경제를 파탄시키고 사람들의 의욕을 상실케 합니다. 대다수 공산정권에서 그들이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은 국민을 압제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반공의지와 여러분 같은 용감한 전사들입니다.
You in the 2d Infantry Division and in the other branches
of the Armed Forces are our shield against the tyranny and the deprivation that
engulfs so much of the world. After speaking to many Koreans both in and out of
government, I know that they, like our own citizens, are profoundly grateful to
you. We fully understand the hardship of your task. We know about the cold,
windswept nights that leave you aching from head to foot, I'm sure. We know about
having to stay awake and alert on guard duty when you'd rather be at a movie or
doing something more pleasant back home. We know about the birthdays and the
holidays that you can't spend with your loved ones. We know about the danger.
You're facing a heavily armed, unpredictable enemy with no record -- or regard,
I should say, for human life.
여러분의 2사단과 이를 지원하는 다른 미군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독재와 침탈에 대항하는 방패입니다. 한국정부와 한국인과 대화에서 그들은 우리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임무수행을 위한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추위와 거센 바람에 노출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처럼 긴장하며 비상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영화를 보거나 자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서 생일이나 휴일을 보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분의 위험성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 무장하고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적과 목숨을 걸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Let's always remember August 18th, 1976, the day that two
Army officers, Major Arthur Bonifas and First Lieutenant Mark Barrett, were
murdered across the road from here by ax-wielding North Korean troops. Let me
state for the record --, and I know you feel this way -- nothing like that
better happen again.
우리는 1976년 8월 18일 보니파스 대령과 바레트 대위가 여기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북한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며 여러분도 저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만 이보다 더 잔학한 만행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The self-doubts of the 1970's are giving way in America to
a new era of confidence and a sense of purpose. Communism is not the wave of
the future, and it never was. It's good to see people beginning to wake
up to that fact.
70년대 미국인들이 가졌던 의구심은 사라졌고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목적과 확신의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저에게는 아주 고무적입니다.
Yes, we, too, have our faults. But we've got a heck of a
lot more to be proud of, and we're not afraid to say so. In Lebanon, for
example, our marines are peacekeepers in the truest sense of the word. We're
there to give some chance to people of that troubled land, a region whose
destiny is crucial to our security. More than 230 of our marines -- actually, I
understand the final count now is -- the final identification is 239 of our
marines and soldiers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in that honorable
endeavor. Each of us is indebted to every one of them.
물론 우리 역시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랑스러워해야 할 많은 것이 있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 사례를 들면, 미 해병은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유지군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안보에도 중요한 분쟁의 땅에서 사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230명 최종적으로 239명이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희생에 대하여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Recently, as you know, we sent our forces to the island of
Grenada. Some critics compared that operation with the Soviet invasion of
Afghanistan. Well, let me just say there's something seriously wrong with
anyone who can't see the difference between 100,000 Soviets trying to force a
dictatorship down the throats of the Afghan people and America and eight
Caribbean democracies joining to stop Cubans and local Communists from doing
the same thing in Grenada.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저는 미군을 그레나다 섬에 파견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 파견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글쎄요. 십만의 소련군이 아프카니스탄 국민의 목을 조르며 독재를 자행하는 것과 미국과 8개 카리브해 국가가 연합하여 쿠바 공산정권이 자행하는 짓거리를 멈추게 하는 것과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And let me ask a question of my own. Why
are the Soviets being attacked by the people of Afghanistan, while our U.S. and
Caribbean forces have been greeted as liberators by the people in Grenada? The
answer is: No people in history have ever chosen to be slaves. We have
held interviews with some of the Soviet soldiers who have deserted in
Afghanistan. A significant thing is in different areas without their
having a chance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or even knowing about each
other. One of the prime reasons they have given us -- young Russians, men like
yourselves, only from Russia -- for deserting is they were ordered to kill
women and children. Some of them proved that there is still some hope
there among the people if the people can ever get a chance to speak.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왜 소련군은 아프카니스탄
국민들로 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미군 연합군은 그레나다에서 해방군으로 환영을 받는가요? 대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도 역사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아프카니스탄에서 탈영한 몇 명의 소련군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 지역에서 주민들과 소통하거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젊은 소련군은 우리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탈영한 주된 이유는 그 곳에서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이라는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아프카니스탄인은 지금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소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People everywhere want to be free.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Afghanistan and Grenada, and between North Korea and
South Korea. Let me just repeat to you what I said to the American people. My
paramount concern in Grenada was protecting the lives of our citizens living
there. Anyone who questions whether their lives were in jeopardy should read
the letters I've received from those students and, on television, we saw them
dropping down when they stepped off the planes in Carolina, kissing the ground
as they arrived on American soil. Just the day before I left on this trip, we
had some 400 of them on the South Lawn of the White House to meet some of the
men who had come back after freeing them and that's all you needed was to see their
gratitude to your comrades in uniform and hear their statements of what they
felt their plight was and how they had truly been saved.
이 지구상의 사람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바로 이 점이 아프카니스탄과
그레나다의 차이이며 북한과 한국의 차이입니다. 제가 미 국민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전달하고자
합니다. 저의 가장 큰 관점은 그레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 느꼈던 한 아프카니스탄
학생이 저에게 보내온 편지를 읽고 그들이 미 캐로라이나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한국방문 직전에 400명의 그 학생들은 백안관 남측 잔디로 초청되어 어떻게 그레나다에서 구출되었고 탈출 비행 시 무엇을 생각했는지 듣고 그들이 미군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Only 10 years ago, youngsters of that age in too many
places in our country were throwing rocks at men in uniform. Well, there's a
different attitude now. When you're rotated and you're back home, I think
you're going to find out how proud the American people are of you. To call what
we did in Grenada an invasion, as many have, is a slur and a misstatement of
fact. It was a rescue mission, plain and simple.
10년 전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이 또래의 아이들이 미군에게 돌을 던지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이 교대하게 되어 귀국하게 되면 미국인들이 얼마나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느낄 것입니다. 우리의 작전을 그레나다 침공이라 했던 의견은 오해입니다. 이것은 간단 명료하게 말하여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We Americans bear a heavy burden. Others
must do their part. The people of Korea, the Republic of Korea, are certainly
doing their share. Yet, if freedom is to survive, if peace is to be maintained,
it will depend on us. Our commitment in Korea exemplifies this heavy
responsibility. We've stood shoulder to shoulder with the Korean people for 30
years now. It reflects well on the character of our country that we've been
willing to do this in a land so far away from home. In the end, it is this
strength of character that will make the difference between slavery and freedom
-- but more important between peace and war.
우리 미국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다른 국민도 그들의 짐을 나누어서 져야 합니다. 한국의 국민도 역시 그 짐을 나누어서 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지속되려면 드리고 자유가 지켜지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있습니다. 한국을 방위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가 이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30년동안 서로 어깨를 맞대고 적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미 합중국이 바다건너 이억만리 머나먼 타국에서 이 미국의 의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가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그리고 전쟁에서 평화로 바뀌도록 결정하는 것이라 귀결합니다.
Thirty-three years ago, Americans gallantly fought and died
on the gulleys in the hills of the Korean peninsula here. One of them was
Master Sergeant Stanley Adams and another was Captain Lewis Millet. They both
led bayonet charges against vastly superior forces. Another hero was Master
Sergeant Ernest Kouma, who exposed himself to enemy fire by manning his machine
gun from the back of his tank and, in so doing, saved his comrades from an
onslaught that could have devastated their ranks. A fourth was Lieutenant
Colonel John Page, one of the heroes of the Chosin Reservoir, whose ingenuity
and bravery saved so many and all of these were Congressional Medal of Honor
recipients. Yet, we know that all who fought here were heroes and deserve our
respect. They did their duty and by doing so, they protected not only Korea but
a whole generation of Americans.
By the way, one of the children of a Medal of Honor
recipient I just mentioned, Captain Lewis Millet, sent me a telegram a few days
ago in support of the Grenada rescue mission. Well, today you carry on an
honorable tradition of those who went before you. And I know that you're
keeping faith with them and with their families and friends. Americans are now
standing tall and firm. No terrorist should question our resolve, and no tyrant
should doubt our courage. Your division motto is ``Fit to fight, second to
none.'' Well, you've lived up to that motto, and we're proud of you for it. With
your courage and dedication as an example, we're going to make as certain as we
can that the United States remains second to none.
30년 전 한반도 산악지대 계곡에서 미군은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아담스 상사이며 밀레트 대위입니다. 그들은 압도적인 북한군을 향하여 착검을 하고 돌격했습니다. 또 한 명의 영웅은 코마 상사로서 그는 적의 총 공격 시 전차 후방의 기관총을 쥐고 스스로를 적에게 노출시켜 아군이 전멸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네번째 영웅은 장진호 철수 시 페이지 중령으로 그의 비범과 용감성으로 병력손실을 막았으며 이 모든 영웅들은 미합중국 훈장을 수여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한국전에서 싸웠던 모든 병사들이 다 우리의 영웅이며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의무를 다 하였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수호하였습니다. 언급한 미레트 상사의 한 자녀가 몇 일전 그레나다 작전을 지지하고 있다는 전보를 제게 보내왔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미 육군 선배들의 이러한 명예로운 전통을 현재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배, 가족 및 친구에 대한 신뢰를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굳건히 서서 독재자에 대하여 미국의 결의와 용기를 시험하거나 의심하지 말도록 전하고 있습니다. 2사단의 모토는 “전투에서 결코 준우승이란 없다. (Fit to
fight, second to none.)”로서 이 정신에 따라 복무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용기와 헌신에 힘입어 미합중국은 앞으로도 모든 전쟁에서 승리해 나갈 것입니다.
I have never been as proud as I am right now and from what
I've seen here. I know that in spite of what I said about our people back home,
I'm not sure that very many of them realize that you aren't just sitting here
doing some kind of garrison duty. And I'm going to do everything I can to make
sure that the folks back home know what you really are doing.
저는 현재 여기서 여러분을 만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고국의 국민들의 생각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많은 가족들이 여러분이 단지 경비임무만 수행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귀국하면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러한 임무를 고국에 계신 미국인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전달할 것입니다.
So, soldiers of the 2d Infantry Division, God bless you and
God bless America. Thank you."
미 2사단 장병 여러분과 미합중국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Note: The President spoke at 12:14 p.m. in the mortar
bunker area of the camp, which is located near the DMZ (demilitarized zone)
dividing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대통령은 DMZ에 있는 캠프의 박격포 진지에서 12:14에 연설을 하였다.
Earlier in the day, the President attended a worship
service at the camp. He then went to Guard Post Collier in the DMZ for a tour
and a briefing.
오전에는 캠프의 교회당에서 예배를 보았고 콜리어 GP를 방문하였다.
Following his remarks at the camp, the President joined
troops of the 2d Infantry Division for lunch in the Mess Hall. He then went by
a helicopter to the Republic of Korea Army 1st Corps headquarters.
연설을 마친 후 미 2사단 장병과 식사를 하였고 헬기를 이용하여 국군 1군단을 방문했다.
After viewing a parade and Taekwondo drill, the President
returned to the residence of Richard L. Walker, U.S. Ambass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where he stayed during his visit. The Ambassador's residence is
located is Seoul.
국군 사열과 태권도 시범을 관람한 후 대통령은 서울에 있는 미 대사 관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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