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 of the Cemetery Happy Valley in The Hill of Menaemi 메내미 고개 전사자 매장과 Happy Valley묘역의 탄생
Happy Valley전투에서 영국군은 157명이 전사했다. 원래 208여명이 실종 되거나 전사한 것으로 믿어졌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생존한 영국군들이 귀환했고 나중에 포로가 되었던 몇몇 장병도 탈출하여 귀환하였다. 중공군들은
영국군의 전사자들을 모두 방치하고 서울로 가버렸다. Royal Ulster Rifle(이하 RUR) 대대의 전사자는 그런 상태로 며칠 동안 방치되었다.
주 전장이었던 삼하리의 농민들은 이렇게 유해를 놔두는 것은 생활에도 지장이 있고 인간의 도리도 아니니 합심하여 모두 매장하자는 말이 나와서 시간이 있는 대로 전사자들을 매장하였다. 영하의 날씨 때문에 유해들이 부패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매장한 묘지가 Happy Valley에 10여 곳이 넘었다.
조금씩 날씨가 풀리는 2월 하순이 되자 푸른 풀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태호씨가 지금도 아픈 기억이 생생한 것은 RUR 대대원들을 매장한 묘지 위에서 다른 곳의 것들보다 더욱 무성하게 자라던 푸른 풀들의 애처러운 모습들이다. RUR 대대 재향군인회 Som Association의 사무총장 Carol Walker 여사가 이태호 노인을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으며 가눌 수 없는 눈물을 떨구던 모습이 새롭다.
3월이 되자 중공군들은 물러가고 RUR 대대가 돌아왔다. 그들은 한국인 통역을 통해 묘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매장된 무덤 제보자에게는 약간의 보상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RUR 장병들은 전사자가 가장 많이 매장된 매네미 고개의 북쪽 산록에 집단 묘역을 조성하고 전사자들을 발굴하여 이곳에 모두 합장하였다.
이 땅은 국유지였었고 한국 정부는 이 묘역의 땅을 영국 정부에게 증정했다. 묘역을 조성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RUR 대대장 Carlson 중령은 임진강에 배치된 RUR 대대와 서울을 오고 가면서 길가 한 석물공장에서 분홍빛 도는 큰 돌을 발견하였다. 그때 홍제동 화장장 부근에 석물(石物) 공장들이 많았었는데 중령은 아마 여기서 묘비를 제작한 것 같다. 지금
석물공장들은 북쪽으로 옮긴 벽제 화장터 부근에 많다. 화장장과 함께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묘비의 제막식에는 많은 영국군이 참석했었고 주민들도 많이 참관했었다. 이 묘역이 설치되고 주일이 되면 truck을 탄 영국군 장병들이 많이 찾아와 추도예배를 보았다.
세월이 몇 년 흐른 1956년, 묘역 주변이 영국군과 한국인 인부들이 몰려와 소란스러웠다. 유해를 모두 본국으로 이장해 간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지금도 Happy Valley유해가 영국으로 이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 종교적 의식이 있고 발굴된 유해들은 모두 천으로 정중히 감싼 뒤에 관에 안치하였다. 이 관들은 미 helicopter들에 의해서 어디론가 여러 번 운반 되어졌다. [아마 용산 미군 기지로 운구해간 듯하다 영내로 열차가 통행할 수가 있다.] 이
유해는 모두 열차편으로 부산의 UN군 묘역으로 운구 되어 이곳에 다시 모셔졌다. Blake 소령을 비롯한 Happy Valley전몰자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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